To be Anything , To be Nothing

 

 

<To be anything , To be nothing>

 

참여 작가: Skingraphy (송아리, 정은형), 박다빈, 양승욱, 허수연

장소: 탈영역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 1F

일시: 2023.01.12. – 01.29 (휴관 없음)

관람 시간: 오후 1시 – 7시

기획: 현대미술학회 C.A.S (인스타그램: @contemporary.art.studies )

협력: 탈영역우정국

프로그램 – Skingraphy 퍼포먼스 일정: 

01.14 (토), 01.15 (일), 01.28 (토), 01.29 (일) 총 4회 오후 2시에 진행

 

두 개의 달이 뜨는 곳. 굳건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믿음마저도 허물어져 간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 여기와 저기, 모든 것이 뒤섞이고 얽힌 채 휘몰아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학이 새롭게 규정되고, 여러 실시간이 번쩍이며 다가온다. 인간과 비인간 또 의미와 무의미 역시 파헤칠수록 뿌옇게 덮어져 중첩된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의미와 지위를 부여받는 동시에 많은 것이 버려진다.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점차 주목받는 동시에 많은 것이 외곽으로 밀려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곳.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속하여 버려지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완벽하게 새로운 것이 끼어들 틈 없는 시대, 모든 버려진 것은 결코 영원히 폐기되지 못한 채 일렁이는 불안 속에서 차용의 호명을 기다릴 뿐이다. 이질적인 성격들이 계속하여 부착되고 이내 복잡하게 얽혀 숨어버린다. 한 번 부여된 의미는 다시는 폐기되지 못한 채 흔적으로 남아 엉겨 붙는다. 가득 차 뿌예져 버린 관계망 속에 부유한다.

모든 극단에 난 구멍, O 와 X 사이를 빙빙 도는 곳.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이 된다. 자유로운 해방의 탈을 쓰고 우리를 선택의 감옥에 가둔다. 전시는 ‘쓰레기’에서 이러한 현대의 특성을 읽어낸다. 열렬히 사용되던 것, 의미의 과부하를 겪고 소진되어 버린 것,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폐기되지 못하고 언젠가 새로움의 탈을 쓰고 부활할 운명을 가진 것. 또는 미처 발견되지 못해 선택되길 기다린 채 버려져 있는 것.

쓰레기는 누군가의 기억과 의미를 흔적으로 가지는 동시에 무의미와 무가치를 상징한다. 쓰레기로의 명명은 일종의 변태. 버려짐을 통해 본래의 이름을 잃고 임시성의 정원으로 진입한다. 무규정의 중립지에서 마주하는 것은 가능성,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상태의 지속이다. 사용과 폐기의 경계에서, 또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끌어안은 채 소멸되지 못한 유령으로 남아 변하거나, 기다리거나, 부활한다. 전시는 다성적 경계에 서 있는 쓰레기에서 오늘의 삶을 발견하며, 쓰레기와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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