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영 ⟪입체경⟫

조호영 개인전 ⟪입체경⟫

2023.7.29.(토) – 8.12.(토)
월-일 13:00 – 19:00 (오픈일 16:00 – 19:00)
탈영역우정국
기획: 신지원
비평: 권태현
그래픽 디자인: 김성구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협력: 탈영역우정국

눈앞의 ‘현상’은 지각된 것, 즉 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대상을 말한다. 그것은 나와 대면하여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지각된 대상, 즉 관념이다. 거기에는 이미 인간이 감각적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것을 지향하게 되는 경향성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개인의 구조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그 자체’로 이해하거나 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미리 구성하고 조작해 놓은 것을 받아들이게끔 한다. 조호영은 이처럼 감각적 지각 체계가 우리를 위해 구성한 세계에서 존재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특히 인식론적 관점에서 경험의 관찰을 통한 귀납 추론의 방법론을 띠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이 과정에서 신체는 관찰을 위한 작업적 실험을 진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조호영 개인전 《입체경》은 개인의 학습된 행동 양식을 실험 형식으로 선보인 지난 개인전 《N번째 종소리》(스페이스홤, 2022)에서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인지 경험을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모색한다.

전시명 ‘입체경’은 두 개의 이미지를 병치하여 조합함으로써 깊이를 만들어 내는 장치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3D 영상에 해당하는 입체경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두 개의 사진을 각각 한쪽 눈에 맞추었을 때 양안 시차로 인해 뇌에서 착각을 일으켜 실재에 더욱 가까운 입체감을 구현하는 원리로 제작된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모루아(André Maurois)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유년 시절을 떠올린 사건에 대해 ‘입체경’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 바 있다. 즉 그의 회상은 같은 감각을 통한 상이한 두 시간, 다시말해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하는 “시간적 입체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호영의 입체경은 어떤 양상일까. 그것은 바로 대상의 모순점을 포착해 관찰하고 이를 제3의 시각, 즉 몸에 근거한 체화된 인지 체계로 깊이를 부여하는 작가의 “인지적 입체상”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조호영이 주목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일상적 경험의 대상과 그 행위 구조를 해체하고, 이를 살짝 비틀어 일종의 무대 장치를 연출한다. 사물의 근본 형태를 찾기 위해 사용된 빛, 소리, 재료 등은 관객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작업 장치는 대상의 실체를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존의 지각 양태를 다양한 파장의 레이어로 확산시킨다. 말하자면 이러한 장치 환경을 온몸으로 감각할 때 의식 아래 깊숙이 가라앉은 습관적 행동과 움직임의 관성이 소환되는 동시에, 예측과 다른 경험 속에서 그에 대한 자각의 순간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낯선 감각이 감지되는 바로 그 순간, 그동안 감겨 있던 반대쪽 눈이 열리면서 대상의 입체적 양각이 서서히 떠오른다.

결국 작가가 발견하고자 하는 실체는 이러한 감각적 상호 조직화의 과정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해 대상은 감각 경험의 타성과 추측, 선입견의 표상과 그것이 지닌 확실성을 의심하고 반문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지각 경험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차의 주파수를 조율해 가는 경로에서 비로소 경험되는 것이다. 여기서 마치 태어나 첫걸음을 내딛는 듯한 낯선 느낌, 한걸음 또 한걸음을 내딛는 움직임이 주는 이 생경한 느낌은 곧 조호영의 작업이 대상의 모습을 앞과 뒤, 위와 아래의 도움 없이 ‘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찰나의 순간을 구현할 뿐 아니라 관념과 실재, 환영과 현존, 앎과 경험 속에 뒤얽혀 있는 우리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새롭게 일깨우기에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자아내는 것이 아닐까.

  

신지원(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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