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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스위트 스팟 Sweet Spot Inaccessible
유영주 개인전
。기간: 2024.8.17 – 2024.9.1
。장소: 탈영역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
。관람시간: 오후 1시 – 7시 (휴관일 없음)
。오프닝: 8월 17일 (토) 오후 4시 – 8시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은 키네틱 사운드 설치물을 통해 입체음향의 새로운 감상 방법을 탐구하는 융복합 프로젝트이다. 난치성 통증증후군을 앓고 있는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해, 제도화된 예술 향유 방식이 만들어온 청중 신체의 정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다채널 사운드 감상시 이상적 지점인 ’스위트 스팟‘에 맞춰 감상자의 자세를 제한하는 기존의 수동적 감상 개념에 대항해 다중의, 혹은 이동하는 스위트 스팟을 제안한다.
유영주는 세 가지 방식의 움직이는 사운드 시스템 설치물로 총 48.1채널의 입체음향 공간을 선보인다. 총 25분 길이의 뒤섞인 세 곡(‘지각체 Feeler’, ‘유체 균형 Fluid Balance’, ‘일시적 지형 Transient Terrain’)은 다중 영역을 형성하며, 각 곡의 구성 요소는 앰비소닉(ambisonic) 방식으로 코딩된 음향적 움직임과 설치물 자체의 물리적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사운드의 움직임과 스피커 채널의 선택적 조합과 사용을 통해 전시 공간은 여러 소리 영역(sound field)으로 분리되거나 결합된다.
관람객이 각자의 스위트 스팟을 발견해보기를 제안하는 본 전시는 정적이고 영원한 상태가 아닌 가변적 균형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면서, ’균형‘, ’편안함‘의 개별성을 상기하고 관람객 신체의 능동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기획・디렉팅 – 유영주
사운드 – 유영주
기술자문위원 – 황주선
패브리케이션 – 팹브로스 제작소
서문 – 김동휘 @longpaper_
그래픽디자인 – 오혜진 (오와이이) @ohezin
현장기록 – 이민규, 윤호준
레코딩 – 임성열 (파랑장레코드) @parangjang_records
행정PD – 이채영
도움 – 이영, 김희주, 김우향
주최・주관 – 유영주
협력 – 탈영역우정국 @ujeongguk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korea
*본 전시는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다원예술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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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s: 2024.8.17 – 2024.9.1
。Venue: POST TERRITORY UJEONGGUK
(42, Dongmak-ro 20-gil, Mapo-gu, Seoul)
。Opening Hours: 1pm – 7pm (No closing days)
。Opening Reception: 2024.8.17 SAT 5pm – 8pm
Sweet Spot Inaccessible is an interdisciplinary project that explores new ways of listening to immersive sound through a kinetic sound installation. It is born from the artist’s struggle with an incurable pain syndrome, which led to a questioning of the traditional audience’s body shaped by institutionalized art appreciation. The project introduces ‘multiple or shifting sweet spots,’ challenging the passive listening norm that confines the viewer’s posture to the ‘sweet spot’ when listening.
Youngjoo presents 48.1 channels of immersive audio space in three different moving sound system installations. The intertwined pieces (‘Feeler,’ ‘Fluid Balance,’ and ‘Transient Terrain’), totaling 25 minutes in length, form a multi-domain, with the components of each piece realized through ambisonic coded movements and the physical movement of the installation itself. The exhibition site is separated or combined into different sound fields through the movement of sound and the selective combination and use of speaker channels.
The exhibition encourages visitors to discover their own sweet spots. It attempts to recall the individuality of ‘balance’ and ‘comfort’ and restore the proactivity of the viewer’s body, attempting a new definition of balance as dynamic and variable rather than a static and eternal state.
Director・Sound – Youngjoo Jennifer Ryu
Technical Supervisor – Joosun Hwang
Fabrication – FabBros Studio
Preface – Donghwi Kim @longpaper_
Graphic Design – Hezin O @ohezin
Documentation – Minkyu Lee, Hojun Yoon, Seongyeol Lim
PD – Chaeyoung Lee
Thanks to – Young Lee, Heeju Kim, Woohyang Kim
Host・Organizer – Youngjoo Jennifer Ryu
Cooperation – POST TERRITORY UJEONGGUK @ujeongguk
Sponsor – Arts Council Korea (ARKO)
*This project is selected by the Arts Council Korea’s 2024 Multidisciplinary Arts Creation Support Grant.
[전시 서문]
귀의 궤적으로 음악 만들기
: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의 기원들
- 도달할 수 없는 곳
응집하는 것. 분열하는 것.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것. 이합하고 집산하는 것. 감상자로서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을 오디오와 비주얼 요소로 구분해 이해해본다면, 이때의 ‘비주얼’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괄한다. 시각적 실체를 가진 것은 48.1채널을 구현하는 스피커들과 그에 수반된 구조물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물리적(스피커)/음향적(앰비소닉) 움직임에 따른 소리의 궤적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구태여 비주얼 요소로 지칭하려는 것은 이 작업이 감상자의 이동 경로(선)와 사운드의 전개 영역(면)을 의식하도록, 전시 공간 위에 시각적 이미지를 겹쳐보도록 명백히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가 사운드에 연동된 반응형 조명과 비주얼 가이드를 포함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비유컨대 이 상상된 지도는 지형도보다는 기상도에 가깝다. 고정된 영역이 아니라 지형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작가가 이 작업을 키네틱 사운드(kinetic sound)로 정의했음을 염두에 두고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음악 자체보다도 그것이 움직인다는 사실일 테다.
전통적인 의미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은 입체 공간에서 음악 감상에 최적화된 (것으로 상상되는) 고정 좌표다. 감상자의 위치(X/Y축)는 물론 이어 레벨(ear level)―평균적인 귀의 높이(Z축)까지 고려해 설계한다. 소리를 한 점에 수렴시키는 것이 원칙으로, 사운드의 소실점 혹은 무게중심이라 비유할 수도 있다. 주목할 것은 이번 작업이 의도적으로 스위트 스팟을 교란 혹은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피커가 물리적으로 회전·이동하고 사운드의 발생 지점과 진행 방향 또한 가변적이다. 형성된 스위트 스팟이 패닝에 따라 이동하기도 하지만 출력 방향이 한 점에 모이지 않으면서 중심 자체를 분산해버리기도 한다. ‘최적’의 감상을 구한다면 감상기구에 누운 혹은 기댄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소리의 진행을 추적하며 전시장 내부를 이동해야 한다.
- 〈일시적 지형〉: 아크로코린트[1]의 노래
이 대목에서 유영주가 전작들에서부터 지속해온 주제, 즉 난치성 통증증후군을 앓고 있는 작가의 ‘고통’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병의 원인이 여전히 의학적인 소명 없이 외부적(환경적) 폭력의 영향 정도로 (간신히) 추정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감상자의 위치와 자세, 감상 방식 자체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기존의 스위트 스팟 개념 역시 일종의 힘(폭력)에 대응되는 것으로 읽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후속 질문은 이런 것이다. 스위트 스팟이 과연 감상자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는가. 고정된 위치와 자세를 강요하는 관습 또한 힘(권력)이라면 이는 사실상 ‘불편함’의 강요가 아닌가. 이 작업이 ‘고통’의 대척점에 ‘편안함’을 세운 연유다.
스위트 스팟을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구현할 수 없다(impossible)고 단언하는 대신 도달 불가능한(inaccessible) 장소로 상정한 것은 그러므로 일종의 질문이 된다. 도달(access) 가능성을 논함에는 편안한(고통 없는) 상태에 대한 소망과 무력한, 그럼에도 반복되는 시도가 내포되어 있다. 스위트 스팟이 고통을 일시적으로 망각하게 하는 신기루 같은 안전지대, 세이프 존(safe zone)이라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포착했다고 생각하면 흩어지는 것,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어지는 것. 이런 독법에서, 스위트 스팟을 해체하는 행위는 단순히 관객을 교란하고 괴롭히기 위한 장치를 넘어선다. 이 복잡한 음향 설계가 그저 새로운 감상 방식을 제안한다는 식의, 실험 음악을 의도한 것만도 아닐 테다. ‘불가능한 균형’의 추구라는 감상 경험 속에서 관객에게 끊임없이 상기되는 어떤 키워드. 강요된 고통과 반항, 무력해 보이는 시도와 반복. 비교적 명확하게, 질문은 실존의 주제로 확장된다.
- 〈유체 균형〉: 라바 램프 속에서
작가는 작업의 구상 단계에서 참조 이미지로 라바 램프(lava lamp)를 들고 있는데, 투명한 병 속에 염색된 액체와 왁스 등의 혼합물을 담아 전구의 발열에 따라 비정형의 덩어리들이 부유하거나 변형되도록 한 유체 조명을 가리킨다. 본 작업에서 다채널로 출력되는 사운드들이 응집해 가상의 덩어리, 영역(場)을 이루거나 분열하며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시각 요소에서 라바 램프를 주요한 참조점으로 추측해도 무리는 없겠다.
물론 본 작업에서 음향 설계의 비정형성과 가변성이 시각적 ‘재미’ 요소로서만 고안된 것은 아니다. 사운드가 유도하는 관객의 적극적인 감상 행위, 즉 신체의 움직임이 개입할 때 전시는 개별 감상자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음악(경험)으로 분화된다.[2] 감상자는 유동적인 사운드와 교감하면서 자신만의 균형을 모색하는데, 이 균형 또한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지형으로서,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쉽게 무효화된다. 이는 곧 주체로서 관객의 행위가 작품의 내용에 포함됨을 의미한다.[3]
그러나 감상 경험의 확장이라고 해서 관객이 발생시키는 소음 혹은 침묵 등 우연 요소까지 음악의 일부로 포섭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확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음악의 역할 안에서, 이 작업이 새롭게 제안하는 것은 관객-사운드, 즉 감상자의 위치와 소리의 영역을 각각 기준점으로 한 거리와 방향이다. 요컨대 감상자의 위치 및 자세, 그리고 사운드(파동)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갖는 힘인 셈이다. 기존의 스위트 스팟 개념이 음악의 감상 방식을 강제해온 힘(power)을 기각하면서, 수용자와 음악 사이에 또 다른 힘(energy)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인장력이라 비유할 수도 있겠다.
이때 사운드의 ‘힘’이란 기하학적 값을 갖는 것으로서, 음정이나 음량과 마찬가지로 기보(記譜) 가능한 요소가 된다. 매체(media)의 이전 또는 확장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매체(medium) 내에서의 재창안이라는 점에서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미디엄 논의와 관련지어 이해해볼 수도 있다.[4]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은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음악의 개념을 확장하면서도 매체의 본질에 숙고하는 작업이다.
- 〈지각체〉: 감각의 기원
개별 음악의 제목 중 〈지각체〉의 영문 표기는 ‘feeler’다. 곤충의 더듬이와 같이 감각을 수용하고 인지로 전달하는 기관을 뜻한다. 이를 ‘지각체’로 옮긴 것은 이때의 감각(feel)이 촉각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일 테다. 이번 작품을 분류함에 ‘오디오비주얼’은 그 정의가 다소 협소해 보이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을 보다 넓은 의미의 ‘감각’에 관한 이야기라 한다면, 이때 감각은 ‘신체’로 갈음할 수 있다. 고통은 기본적으로 ‘몸’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정신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에서 유비된 것이다). 물론 음악은 원래 신체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것이 음악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저 수사는 아니다.
관객의 신체가 작품에 참여하는 궤적을 기보할 수 있다 했지만, 엄밀히 이는 악보가 아니라 무보(舞譜)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춤의 기본은 소리에 반응하는 신체다. 기원(choreia)이 하나였던 이유다. 어떤 기원에선 슬픔을 정화(catharsis)하기 위한 더 큰 비극이었고, 어떤 기원에선 고통(tanha)에서 해방되기 위한 기도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불가능한 스위트 스팟》은 관객을 (고통 속에서) 춤추게 한다. 그저 수사는 아닐 것이다.
[1] Acrocorinth 또는 아크로코린토스.
[2] 라바 램프의 특성과도 유비되는데, 이러한 비정형 임의성을 이용해 다수의 라바 램프를 놓고 카메라를 이용, 그래픽 변수로 처리해 난수를 생성하는 Lavarand라는 방식이 존재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생성하는 의사난수에 비해 임의성 면에서 순수해 ‘Wall of Entropy’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3] 이는 창작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 역시 전시 공간 내에서는 감상자로 참여하게 되며, 매 참여마다 경험의 내용은 달라진다. ‘동일한 감상’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공간 이동이 없는 감상기구마저도 비고정형 구조물을 의도하여 동적 감상을 유도했는데, 장시간 부동자세로 있을수록 통증이 심화되기 때문에 잦은 스트레칭 또는 가벼운 활동이 요구되는 작가의 병증에서 착안한 것이라 볼 여지가 있다.
[4] 피터 바이벨의 포스트-미디어(post-media) 담론과 구분하여 단수형으로서 매체(medium)를 지지한다. 뉴미디어 등장 이후의 미술을 논하면서, 기술적 지지체(technical support) 개념을 통해 매체 특정성을 되찾고자 했다. 『북해에서의 항해⎯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김지훈 옮김, 현실문화, 201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