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라일락》 Miss Kim Lilac 정지수

 미스김라일락 Miss Kim Lilac 

  • 전시 기간: 10/06 – 10/29
  • 오픈 시간: 13:00-19:00 (휴관일 없음)
  • 오프닝 행사: 10/06 17:00- 19:00

 전시 《미스김라일락》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반출되어 미국의 식물학자로부터 이름이 붙여진 꽃나무 미스김라일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식물의 이름은 한국과 미국을 이동하며 여러 번 교체되는데, 이 이름의 변천사는 국가 간 정치적 힘의 역학, 자연의 자본화, 그리고 여성 이주민의 정체성을 내포하는 시공간의 지표이기도 하다. 자신을 인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의 틀인 이름. 여러 이름을 거쳐 이제는 미스김이라는 낡은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 나는 이름 속에서 잃어버린 그녀의 정체를 다시 찾아줄 수 있을까? 전시《미스김라일락》은 꽃나무 미스김라일락의 관점에서 그의 역사를 탐험하고 주어진 이름이 담지 못한 존재의 자아상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다. 

  • 주최: 정지수
  • 협력: 탈영역우정국
  • 후원: 서울문화재단, 푸핀 파운데이션, 국제라일락협회
  • 비평 및 서문 도움 : 이연숙 (리타)
  • 그래픽 디자인: 정지수 
  • 그래픽 디자인 도움: 정지호
  • 사운드 디자인: 딜런 막스 
  • 설치물 제작: 공공스페이스
  • 드로잉 협업: 윤다진, 예은 스티비 최, 이정목, 김채영, 강숙완, 정서빈, 정지호 
  • 출연: 존 벤틀리, 에린 시겔, 뉴햄프셔대학 농업실험장 
  • 영상 도움: 굳민턴(조우희, 커피강, 최진석, 에블린 인), 션 스프레그, 료이 시, 올리비아 몰, 패티창
  • 이미지 제공: 한국이미지아카이브(Korean Image Archive), 뉴햄프셔 대학 

정지수는 서울과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작가이다. 비디오와 설치를 통해 일상적인 사물과 기술 안에 구성된 언어를 탐구한다. 자동 수정, 오역, 오해석과 같은 언어의 실패가 만들어내는 유머는 종종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전시 서문

 

미스김라일락은 광복 후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청에 파견된 식물학자, 엘윈 미더가 북한산에서 자라던 꽃나무의 종자를 채취하여 미국으로 가져가 품종 개량한 정원수이다. 1954년, 미더에 의해 ‘미스킴라일락(Miss Kim Lilac)’으로 명명된 이 꽃나무의 이름은, 기록에 의하면 엘윈 미더가 한국에 있는 아름다운 미스김들을 기리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미스킴라일락은 병충해에 강하고 유 지가 쉬워 국제 화훼시장에서 주목받아 왔으며, 한국도 1974년부터 이 정원수를 국내에 역수입하고 있다. ‘미스킴라일락(Miss Kim Lilac)’의 이름은 한국으로 다시 들여올 때 ‘미스킴(Kim)’이 아닌 ‘미스김(Gim)’ 라일락으로 바뀌었다. 한 때 ‘수수꽃다리’로 불리던 식물의 이름은 ‘미스킴(Kim)라일락’으로 교체되었고 다시 ‘미스김(Gim)라일락’으로 불리며 여러 개로 늘어났다. 이처럼 이 꽃나무 의 이름은 미국과 한국 간 정치적 문화적 힘의 역학, 문화적 전유, 여성의 대상화, 미국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번역되어 변모하는 이주민의 정체성의 교차점에 놓이며 시공간의 지표가 되었다.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가는 한국인 여성인 나는 미스김라일락에 나 자신을 이입한다. 영어 이름이 아닌 나의 한국 이름은 미국에서 잘못 발음되거나 불리곤 한다. 이 잘못 불리워진 이름들로 인해 새롭게 부활된 페르소나로서 나를 재인식하는 경험은 이름이라는 헐거운 틀을 통해 정체성을 체득, 체화하는 언어와 자아의 질펀한 연결고리를 되짚어 보게 한다. 자신을 인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의 틀인 이름. 여러 이름을 거쳐 이제는 미스김이라는 낡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그녀. 나는 이름 속에서 잃어버린 그녀의 정 체를 다시 찾아줄 수 있을까. 나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배달 음식에 딸려 오는 핫소스, 파마산 치즈, 와사비, 간장과 같은 일회용 소스들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 곡 모아 왔다. 어머니는 이 소스들을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서 냉장고 한쪽에 보관하고 그에 맞는 이름표를 적어줬다. 버려질 뻔한 이 소스들은 이름표로 인해 존재할 장소를 부여받고 자리매김한다.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우리는 대상을 한 번 더 인식할 수 있고 그것에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에는 친밀함과 돌봄도 같이 있다. 사회적 가치 체계의 역사적 잔재인 이름 은 그 이름으로부터 미끄러지기만하는 몸들에 외상을 남기지만 동시에 존재를 인식하고 그와 세계를 잇는 아주 친밀한 도구라는 점에서 모순적인 기능을 가졌다. 《미스김라일락》은 이름에 담겨진 쟁취의 역사와 힘의 역학을 추적하고, 이름과 대상 간의 근원적인 역설 관계를 질문하며 시작되 었다. 이름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언어 이면의 사회·정치적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미술로써 재배열하는 여 정이 이름을 통해 맺어진 대상과 세계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해 나갈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자 율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의 틀을 제공할 수 있을까. *첨언: 우리나라에서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나무는 팔리빈 라일락이다. 팔리빈 라일락의 별명인 “한국인 난쟁이” 가 다 른 나무에 비해 낮게 자라는 미스킴의 특성과 별명이 중첩되어 혼동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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