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팟라이트, 평평한 무덤들에게》
*본 전시는 사전 예매를 통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회화, 조형, 영상, 연기라는 이종적인 형식들이 한 공간에 배치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번 전시 <스팟라이트, 평평한 무덤들에게>는 바로 이 감각번역을 중심으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각이나 청각을 넘어, 전달되기 어려운 감각이라는 내밀하고 정치적인, 아니 내밀해서 정치적인 감각에 대한 작품이다.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고민, 거기서 비롯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혹은 파묻힌 감각들을 꺼내어 안간힘을 다해 번역해 낸다. 그것은 기존 서사의 틀에서 편안하게 이해되지 않는 가상의 이야기,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어렵게 즉흥적으로 내뱉는 중얼거림,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추상화, 사물과 너무 가까워서 닿을 것 같은 빠른 호흡의 영상, 그리고 이 모든 작품을 얼기설기한 ‘하나’로 엮어내는 배우의 연기와 공간을 채우는 음악으로 이루어진다._[감각번역이라는 주술적 낙관], 안희제
■참여진
김다혜, 김이태, 문조
승비, 박미아, 장명선
■감각번역가(출연진)
권은혜, 김지유, 이효진, 피지융
■일정 및 장소
2024년 11월 1일 ~ 11월 10일 (월요일 휴관)
1일 3회 운영 *회차당 5인 선착순 마감
1회차_17:00 ~ 18:00
2회차_19:00 ~ 20:00
3회차_20:00 ~ 21:00
■탈영역우정국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20길 42
■사전 예매
-예매 방법 : 프로필 링크/DM/이메일
-예매 오픈 : 10월 18일(금) 19시
–예매하기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1T-tVXTuR-pMQLpDo8V1QVgEjIvhOVmkQhXCnOarqjnwnFg/viewform
기획: 김이태
연출: 승비
작가: 김다혜
문조
연기자: 권은혜
김지유
이효진
피지융
그래픽: 박미아
음악: 장명선
자문 및 서문: 안희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 탈영역우정국
감각번역이라는 주술적 낙관
– 안희제
모든 존재는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느낌을 표현한다 음성 표정 손짓과 , 발짓, 전기, 신호. 그러나 느낌은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변형되어 서로 다른 의미들을 생성한다 마치 .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단어 선택에 따라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바라지 않나 나의 느낌과 의미가 너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는 불가능한 일을 그 마음이 간절할 때 우리는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주술을 위한 판을 깐다.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은 문화예술의 배리어프리 실천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에서 장면을 청각적으로 전달하는 화면해설 소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폐쇄자막이 가장 흔한 사례다 공연예술에서도 미리 주어진 대본을 활용하거나 실시간으로 시각 정보를 청각적으로 전달하는 형태가 늘어나고 있고 공연에 앞서 공연장을 만져 보는 터치투어 도 더 많이 시도되고 있다. 원래 건축물의 접근성에서 시작된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물론 배리어프리라는 이름 안에는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재현의 문제였다 화면해설은 장면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 폐쇄자막은 배경음악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작업이며 무엇보다도 비장애인 중심의 문화예술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던 많은 작품의 접근성을 확보할 때 필요하다.
감각번역은 여기서 출발하되 조금 더 발본적인 이야기를 시도한다 감각번역은 말 그대로 감각들 사이의 번역을 의미한다 청각 정보를 시각 정보로 시각 정보를 촉각 정보로 변형하여 귀로 느끼던 것을 눈으로 눈으로 느끼던 것을 손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하나하나의 감각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며 화면을 해설할 때 발생하는 제약이 화면 자체를 다시금 조정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감각들이 서로에 개입하도록 만든다 감각이란 근본적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감각들 사이의 번역이 있기 전에 감각이라는 번역이 있다.
배리어프리가 재현의 문제라면 감각번역은 회절의 문제다 번역 과정은 감각에 대한 반영을 넘어 감각들이 상호간섭하면서 서로를 변형하고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하는 것이다 어떤 영상의 화면해설을 만들고자 할 때 그, 장면에 담긴 정보를 전달하는 화면해설이 너무 길다면 혹은 소리를 듣는 것에 비해 자막을 읽는 것이 느리다면 그래서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공연 자체를 늘어지게 한다면 감각들 사이의 상호간섭은 감각들을 모조리 지연시키면서 작품 자체를 변형하기에 이른다 관객은 감각들의 간섭 혹은 충돌을 마주하면서 그 과정 안에서 작품을 기다려야 한다 바로 . . 이 기다림 안에서 불확실한 의미들이 피어오른다.
회화, 조형, 영상, 연기라는 이종적인 형식들이 한 공간에 배치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번 전시 <스팟라이트 평평한 무덤들에게>는 바로 이 감각번역을 중심으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각이나 청각을 넘어 전달되기 어려운 감각이라는 내밀하고 정치적인 아니 내밀해서 정치적인 감각에 대한 작품이다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고민 거기서 비롯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혹은 파묻힌 감각들을 꺼내어 안간힘을 다해 번역해 낸다.
그것은 기존 서사의 틀에서 편안하게 이해되지 않는 가상의 이야기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어렵게 즉흥적으로 내뱉는 중얼거림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추상화 사물과 너무 가까워서 닿을 것 같은 빠른 호흡의 영상 그리고, 이 모든 작품을 얼기설기한 하나 로 엮어내는 배우의 연기와 공간을 채우는 음악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고민과 상상력은 촉각적으로 집약된다 작품과 장면을 전달하는 대본에 사용된 말들은 의도적으로 이미지보다 질감이 먼저 떠오를 만한 것들로 선택되었고 그림은 만지는 것까지 감안하여 그려졌고 영상은 사물들을 부담스러울 만큼 가까이서 찍었다 이러한 작품들의 배치에서 촉각은 모든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무언가로서 등장한다 너의 손이 나의 손에 닿듯이 반사된 빛이 눈에 닿고 화학 물질 분자가 코나 혀에 닿고 공기의 진동이 귀에 닿고 사실 모든 감각은 근본적으로 촉각적이다.
여기서 촉 (觸)이 단지 닿는 것 뿐 아니라 경계를 뚫고 들어가는 것, 바로그러한 의미에서 느끼다 까지도 의미한다는 데 주목한다면 느낀다는 것은 서로 다른 존재의 상호 침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직 자신들조차 완전히 알지 못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이들은 서사를 비틀며 낯선 형식을 시도한다. 파악하기보다 포착하고 이야기하기보다, 중얼거리고 연결하기보다, 열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이고 절박한 낙관 안에서 낙관은 어떤 미래에 대한 애착이며 그러한 애착에서 만들어진 상상이다.
이 상상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의 틈으로부터 피어오른다 말로 꺼내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 아직 언어가 포착하지 못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고 변용하면서 문법을 이상하게 반복한다 그. 렇게 상상은 현실을 변형하면서 어떤 미래를 일부분 실현한다 여전히 . . 메워지지 않는 틈을 남기면서 네 명의 작가는 공간 사물들 배우들을 동원하여 바로 이 상상을 실체화하고자 한다.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기에 이 낙관은 주술적이다.
한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에 닿게 할 것인가? 여기서 피할 수 없는 상호간섭과 충돌에서 비롯되는 변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직 무엇 인지 모르는 나에게? 무엇을 할지 모르는 타자를 기다리는 감각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있는 그대로 전달될 수 없는 것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든 소통될 수 있다는낙관을 포기하지 않을 때만 가능해지는 것이 있다.
<스팟라이트 평평한 무덤들에게 >, 2024년 11월 1일 ~ 10일, 탈영역우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