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

윤성지 Sungji Yun 개인전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


윤성지 개인전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

장소: 탈영역 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 20길 42)

일시: 2016.08.11-08.31 (1PM-8PM, 월요일 휴무)

오프닝 리셉션: 2016.08.11 목요일 7PM

협력: 탈영역 우정국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탈영역 우정국은 2016년 8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윤성지 작가의 개인전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No Hope with Neoliberalism)>을 선보인다. 홍익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윤성지는 2014년에 있었던 개인전 <신자유주의>와 <위험한 정신 Your Spirit>의 전시를 통해 디지털시대의 소통의 불가능성, ‘나’와 ‘나를 통제하는 세계’ 간의 균열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인터넷,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한 반복적이고 공허한 소통의 모습을 분절적이고 즉흥적인 기호와 색상들로 재현하고, 인간을 위해 작동하지 않고 인간을 지배하는 시스템과 기호체계에 대해 작업해 온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윤성지는 ‘신자유주의’와 ‘위험한 정신’의 전시에서 보여준 새로운 미디어 환경, 인간의 삶, 예술영역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혼란을 겪듯 위태로운 충돌을 관객들과의 소통의 경로는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층위의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폐해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이미지화하는 사회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풀어내게 된다.

윤성지의 개인전 <신자유주의, 빛은 없다 No Hope with Neoliberalism>에서는 오렌지색의 미린다병을 기본 단위로 쇼케이스 안에 진열된 모습들과 철재로 만들어진 핑크큐브들을 연출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관객들은 이 오브제들과 사운드, 환경적 요소들이 어떤 의미체계와 시스템, 기호들로 환원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신자유주의의 의미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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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시는 2014년 있었던 개인전 ‘신자유주의’ 와 ‘위험한 정신 Your Spirit’ 으로 부터 시작된다.

‘위험한 정신’ 전은 디지털시대의 소통의 불가능성, ‘나’와 ‘나를 통제하는 세계’ 간의 균열이라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인터넷, 모바일 폰,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한 반복적이고 공허한 소통의 모습을 분절적이고 즉흥적인 기호와 색상들로 재현하려 하였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질문에 봉착한다.

이러한 나의 질문들, 인터넷시대의 인식론적 구조의 모순을 재현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음’ 이였을까,

그러면, 작업에서 ‘의미 있음’ 은 무엇인가,

비평가의 말처럼 나는 소통을 향한 열망과 좌절을 ‘병치’ 하려 한 것인가,

‘이미지’ 라는 미디어를 통해 나는 지금 또 다시 ‘최종’ 에 닿으려던 것은 아닌가,

# 2.

‘위험한 정신’ 은 야만의 시대를 전제로 한다.

우리를 위한 시스템, 기호 체계 는 없다. 시스템은 시스템으로, 기호는 기호로 작동한다.

온갖 좌절과 열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의구심은 시작된다.

‘의미 있음’ 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나 ‘의미 없음’ 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

결코 ‘미래’ 를 기다리지 않는다. 변모하는 과거 속에서 부유하는 현실만 있다.

그리하여 빛은 우리에게 없다.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인간의 삶 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 역시 급격히 변화시켰다. 작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융복합적으로 사용하는 등 그 형식의 범위가 넓어진 듯 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매체와 예술의 의미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나에게 인터넷의 발달, SNS의 대중화는 새로운 작업환경, 삶의 환경을 제시해 주었다. 핸드폰 속 포털사이트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사이트에서 제안해준 생각인지,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는지 잠재된 고객을 위해 각색된 것이었는지, 관객들과의 소통의 경로는 어떠해야 하는지 새로운  층위의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폐해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이미지화하는 사회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연구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의 관계는 물질기반의 문화를 양산하고, 다양한 문화의 글로벌화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정신적 활동을 확대시킨다. 나는 작업을 통해 사물, 사실 그 자체보다 그것들의 조건들인 비물질적 환경,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의 정신활동에 집중한다. 그리고 현실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작품을 대면하는 대중의 현실세계의 조건들에 대해서 연구가 계속 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예술이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끊임없이 귀착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작품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역시 고민하게 만든다. 작품의 조건들이 되는 사회환경의 변화가 결국 작품으로 다시 환원되어지고 동시에 작품은 그 자체로의 에너지를 생성하며 유지하게 된다.

작가로서의 나의 시간은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모든 체계, 의미의 세계가 실은 결코 최종적인 적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모든 의미는 구조적으로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 있다.

하나의 해석은 다시 다른 해석으로 가는 출구를 열어 놓고 있으며,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은 흘러 간다. 나의 작업은 이렇듯 모든 견고한 것들, 체계, 질서, 구조 심지어 작가로서의 나의 존재까지 무력화시키는 데에 의의를 둔다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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