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임가영

수치심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임가영

2023.09.08~09.29,13:00-19:00

수치심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은 임가영의 퍼포먼스 작업을 ‘수치심’이라는 동기로 인해 ‘인용된 동작들’로 제안하기 위해, 물질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매체 – 부품용 중고 스마트폰 기기의 스크린에 퍼포먼스의 기록을 ‘인용’하는 방식의 아카이브 전시이다.

사운드 협력_ 한정원
안무 협력_ 윤상은
디자인_ 근면스튜디오
협력_ 탈영역 우정국
후원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감사한 분들_ 2022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지 다크투어 ‘시작하는 흙 : 밟다, 묻다, 담다’ 기획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수치심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수치심’, ‘인용’, ‘동작’이라는 단어는 부사격 조사로 묶인 구(句, phrase)를 이루고 있다. 이 ‘구’의 의미는, 간단히 말해 전시된 퍼포먼스 작업이 ‘수치심’이라는 동기로 인해 ‘인용된 동작들’ 이라는 것이다. 각 작업이 창작 시점에 따라 상이한 배경 및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들을 묶어 ‘수치심’, ‘인용’, ‘동작’ 이라는 세 항의 관계 속에서 정의한 것은, 작업 사이에서 공통되게 발견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방법론을 포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렇다면 이 방법론은 왜 찾아내져야 했을까? 작업의 (생성) 구조는 어째서 언어적으로 지시되어야 했을까?

무엇을 말하거나, 쓰거나 행위 하려 할 때 사로잡히는 수치심이 있다. “뭔가에 대해 지극한 관심이 있는데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 즉 그들에게 같은 정도의 관심을 일으키고 그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설득할 수 없다는 데에 (느끼는) 부끄러움” 과 같은 것이다.(멜리사 그레그 편, 최성희 외 역, 『정동 이론』 (갈무리, 2015) – 엘스페스 프로빈, 수치의 쓰기 128p) 머뭇거리다 결국 참을 수 없어지는 때가 온다. 수치심이 견딜 수 없이 커질때, 결국 수치스럽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어떤 동작이 시작된다. 이 움직임에서 온전히 별나고 새로운 것을 구하는 대신 나는 무수히 반복해왔던 일상 속의 행위나 앞서 행해진 누군가의 동작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동작의 인용은 이전에 했던 것이 왜 지금 여기에서 작동할 수 없는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특정한 과거의 사건 위에 쌓인 퇴적층의 한 겹을 더하는 반복일수도 있다. 인용된 동작은 굳이 관중을 향해 상연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인위적으로 따로 떼어진 몸짓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여전히 수치심 속에서 머뭇거리는 퍼포머에게는 친절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이다. 인용으로 인해 퍼포머는 앞서 동작이 행해진 무수한 상황과 대화하고 접촉하는 위치에 놓이면서도(다른 말로 기댈 곳이 있으면서도), 지금의 상황과 단절하고 새로운 맥락을 기입하는, 비로소 행위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전시된 작업들은 각각 저마다의 주제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전시장 안쪽 유리창을 두고 붙어있는 두 개의 방에 설치된 <시그널>은 2016년 미술대학 연구동을 일터로 삼고 있던 세 명의 노동자/예술인의 퍼포먼스를 기반으로한 영상 및 사운드(작곡가 : 한정원) 작업이다. 테라스 공간에 설치된 <풀밟기>는 2022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답사 경험을 토대로한 퍼포먼스 아카이브이다. 인용된 동작 – ‘풀 밟기’를 통해, 여순 사건의 민간인 학살지 중 하나인, 전라남도 구례 봉성산에서의 경험을 반복하는 기록들이다. 전시장 입구 큰 방에는 서울내 공공 장소에서 수행했던 1인 시위 퍼포먼스를 담은 <넷페미>(2013)와, <OOO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 리서치>(2023)(안무가 : 윤상은)가 섞여있는 그래픽 스코어 구조물이 있다. 이 작업들에는 야간 근무를 이어가는 대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잊혀진 역사의 기억을 현재의 삶으로 불러들이려는 예술인과 시민 단체의 노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2010년대 초중반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페미니즘에 대한 개인적 기록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업들은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움직임을 강구해내고 실현하는 몸들, 그리고 그것이 놓이는 무수한 장소와 시간들에 대한 것이다. ‘수치심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이라는 작업의 방법론은 이 지점으로 주의를 돌리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작곡가 한정원과 안무가 윤상은과의 협업을 통해 작업의 방법론이 어떻게 개념적 구조물 너머로 전개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려 했다.

움직임을 강구하고 실현하는 몸들, 그것이 놓이는 무수한 장소와 시간에 대한 주목은, 전시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몸들’이 인용된 동작을 어떻게 재연할 수 있는가, 보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람자가 전시장에서 마주칠 ‘몸들’ 대부분은 충전 케이블을 길게 늘어뜨린 중고 스마트폰 기기일 것이다. 이 기기들의

작고 좁은 스크린은 쇼츠나 틱톡 컨텐츠들이 시네마스코프 영상의 좌우와 전체 러닝타임의 앞 뒤를 잘라내버리곤 하는 관행을 빌어 동작을 전시 공간 안으로 ‘인용’하려 한다. 시장에 온전한 중고 상품도 아닌, 해체되어 부품용으로 쓰일 목적으로 매매되는 기기들은 깨진 액정과 예측불가한 노이즈, 사용 시기를 반영하는 구형 인터페이스와 같은 ‘신체적 취약성’ 속에서 동작을 재연한다. “영상에 찍한다는건 ‘미래의 무한한 타자의 시선’을 향한다는 것”(하마구치 류스케 외, 이환미 역,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모큐슈라, 2022), 34p)이라면, 기기들은 이 ‘무한함’의 일부를 변색되고 금간 액정으로 잘라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들 취약한 매체로 구축된 아카이브는 인용된 동작들의 앞 뒤, 옆 밖의 어딘가에 놓인,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부정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공간 사이로, 관람자의 몸이 지나갈 것이다.

작가 임가영은 공간적 규범에 맞물린 행위성의 자율적 운용을 실험해왔다.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언어의 접점을 넓혀가는 방법으로서 행위성에 주목한다. 퍼포먼스 아카이빙, 미디어 액티비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전시연계 퍼포먼스] <OOO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OOO에 의해 인용된 동작들> 은 작가 임가영과 안무가 윤상은의, 총 두 파트로 이루어진 40여분간의 퍼포먼스 공연이다. 첫 번째 파트는 ‘동작의 인용’으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답사 경험에서 인용된 동작 ‘풀 밟기’와, 윤상은의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서 떠오른 동작을 즉흥적인 담화와 함께 재연한다. 두 번째 파트는 ‘픽토그램 – 플로우와 머뭇거림’이다. 이 파트에서는 연습기간 동안 두 퍼포머가 동작의 인용과 내적인 충동, 몸짓 이후 사후적으로 떠오르는 감정 등에 주목하며 함께 만들어낸 ‘플로우’(윤상은)와 ‘머뭇거림’(임가영)을 상연한다.

우리는 연습 과정에서 ‘인용된 동작들’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느슨하게 얽어가거나, 때로는 부딪혀보기도 했다. 나는 “퍼포먼스를 사건으로서의 역사학을 재고하는 수단이자 아카이브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다큐멘터리적 만남으로 간주”하는 레베카 슈나이더의 ‘퇴적된 행위(Sedimented Acts)’ 개념을 길잡이 삼아, 2022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다크투어 워크숍에 참여한 소수의 사람들 사이의 경험을 더 넓은 범위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동작의 인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지점에서 시작했지만, 실제의 연습은 안무가 윤상은이 그간 해온 즉흥 움직임의 방식에 의해 주도되었던 듯 하다. 우리는 픽토그램처럼 정형화된 동작을 찾아내고, 그것이 내적인 충동에 의해 불현듯 인용될 때의 움직임을 실험했다. 이것은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픽토그램-동작을 공간을 가로지르는 플로우와 머뭇거림을 통해 재연하는 프랙티스로 전개되었다.

참고 : Taylor, Nora A. “Sedimented Acts: Performing History and Historicizing Performance in Vietnam, Myanmar and Singapore.” Southeast of Now: Directions in Contemporary and Modern Art in Asia 6, no. 1 (2022): 13-31.

일정 :
1회차 2023년 9월 14일 목요일 오후 5시 (약 40분)
2회차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약 40분)
장소 : 탈영역 우정국 2층

– 출입시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휠체어 사용이 어려울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신청:

https://forms.gle/wfrqbN6QcfmYZ3Mi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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