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준 개인전 <야외 설치형 이젤>
<야외설치형이젤>은 작가가 머무른 연고 없는 장소들의 수묵사생 모음이다. 전시는 세 장소에서의 사생 연작, 사생의 일부를 재해석해 그린 연작, 그리고 우연한 효과의 실험작들로 구성되었다.
최형준 개인전 <야외 설치형 이젤>
일시: 2023.06.23(금) – 07.09(일)
관람시간: 13:00-19:00
휴무일 없음
장소: 탈영역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 탈영역우정국
오프닝: 6월 23일(금) 17:00
글/기획 도움: 주아명
그래픽 디자인: 권혁규
사운드: 김기홍
작가: 최형준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협력: 탈영역우정국
순응주의자의 사생
사회복무 통지서가 떨어진 뒤 이동하게 된 경기도 양주시의 공원, 사회복무 시설, 훈련소의 공통점은 작가가 제 의지로 스며들게 된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어디서든 먹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렸다. 체념보다는 전념으로 그려진 풍경과 대상은 무작위성을 띠는 한편 그림의 잿빛은 일관되었다.
<독바위 공원 사생>의 각각의 면은 완성까지 짧게는 2주가, 길게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종이 위로 번진 곰팡이와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표백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림에 사용된 재료인 먹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먹은 순수한 그을음의 반죽으로, 표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을음은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자 현상을 성실히도 반영하는 재료이다. 그것은 햇볕을 트는 투명한 순지의 얇기만큼이나 자연에 아주 가까웠다. 다만 현대의 먹은 식물의 기름 대신 공업유로 연소한 그을음으로 제조되었으며, 이는 버려진 타이어가 타고 남은 흔적이라는 점에서 옛것과 달랐다.
그을음은 불에 타는 것을 전부 동질적으로 만들어버렸기에 재료로서 복무할 수 있었다. 생명과 공업이 회화의 무위하에 원소화된다. 모든 것은 먹이 될 수 있다. 산개된 이들은 결정1) 의 불가능. 물과 비에 맡겨져 종이의 섬유 사이로 스며들어 태양 아래 건조가 끝난 뒤 마침내 일을 멈춘다. 그을음의 부단한 일과로서의 사생. 순응주의자의 사생은 비와 연기만큼 착실하며,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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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원에 둔탁한 쇳덩이들을 세울 때만 해도 이것은 내몰아 진 사람의 생존신고처럼 느껴졌으나, 점점 완성된 그림들이 걸리고 공원 내 자리를 잡아가면서 구조물은 내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그 장소에 온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수묵 매체, 그중에서도 먹의 주재료인 그을음은 타지도 녹지도 않으면서 아무것에나 딱 달라붙는 특성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한번 그려진 형상은 비에 젖거나 태양 빛 아래에서도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 한지 역시 곱고 긴 섬유질로 만들어져 비에 맞으면 늘어나고 해가 뜨면 다시 줄어들어 본래의 모습을 유지한다. 잿빛의 그림은 다채롭지는 않지만, 외부 환경을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함을 갖고 있다.”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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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최형준(b.1997)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사생과 설치를 기반으로 자연의 풍경이 제공하는 조형적인 변화를 기록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기후적·동적 요소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