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는 사과잼〉 메인 포스터, 2026. 디자인_ 임희윤. 이미지 제공_ 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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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는 사과잼

‘이름 부르기’ 렉처 퍼포먼스 <부패하는 사과잼>은 김인선 작가가 2018년 베트남 나트랑에서 만난 낯선 또래 현지인의 이름 ‘Nguyễn’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했던 경험에서 시작한다. 생소한 언어의 이름을 반복해서 발음할수록 소리는 원래의 발음에서 가까워지는 듯 조금씩 달라졌다. 작가는 이 경험을 통해 언어와 기억, 관계가 시간이 흐르며 변형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Nguyễn은 베트남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씨지만 한국어로는 ‘응우옌’, ‘응웬’, ‘응우엔’ 등 여러 방식으로 표기된다. 같은 도시가 ‘나트랑’이나 ‘냐짱’으로 다르게 불리는 것처럼, 이름과 장소는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는다. 공연은 발음과 번역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차이를 낭독과 사운드, 신체 행위로 구성한다. 

공연에는 사과와 기념품, 오렌지 주스,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같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며 기억과 관계가 보존되고 변형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편, 무한히 커지는 수렴함수 그래프 영상과 구리 및 아연 소재의 금속판에 의해 증폭된 사과의 전기 신호 소리 등 이질적인 시각, 청각 요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2019년 에세이 「썩어가는 것들과 그 이름에 대해」를 집필하고, 같은 해 사운드 퍼포먼스 〈부패하는 응우옌〉의 시연을 진행했다. 이후 2020년 부터의 베트남 체류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연재와 3개 언어 간의 번역 실험을 이어가며 외국어의 발음과 번역, 기억의 변화에 관한 글쓰기를 발전시켜 왔다. 〈부패하는 사과잼〉은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글을 낭독과 사운드, 신체 행위로 옮긴다.

공연 개요

공연명
〈부패하는 사과잼 Decaying Apple Jam〉

일시
2026년 8월 7일 금요일–8월 9일 일요일
매일 오후 4시, 오후 7시

장소
탈영역우정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20길 42

관람료
7,000 원

웹사이트
https://dolentepoem3.wixsite.com/website/decaying-apple-jam-2026

주최·주관 / 작·연출
김인선 Insun Kim

서문
안수연 Sooyeon An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협력
탈영역우정국

문의
dolentepoem3@gmail.com
@insanekim_in_sun

작가 소개

작가는 1996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활동한다. 2014년 인천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영어자유전공과를 졸업했다. 2020년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해부터 1년간 동안폴리테크닉학교(Trường Cao Đẳng Công Nghệ Cao Đồng An, 現 호치민시, 舊 빈즈엉성)에서 베트남어 연수 과정을 수강했다.

베트남 체류 경험과 재외·재일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한 환경을 바탕으로, 외국어를 발음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지연, 기억과 관계가 시간 속에서 변형되는 양상을 글과 퍼포먼스로 다룬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베트남 체류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코리안걸인사이공」을 연재했다. ‘인세인킴’이라는 이름으로 영상과 사운드 작업을 병행하며, 동생인 뮤지컬 배우 김인혜와 함께 사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서문

〈부패하는 사과잼〉

입을 벌려 따라 해보자. 

응 우 옌

응웬

응우엔

Ng u yen

응, 우, 옌. 혀끝을 앞니 뒤에 붙였다가 떼면서, 입꼬리를 옆으로 늘리고 다시 힘을 빼며 소리를 낸다. 발음 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

Nguyễn, 김인선이 2018년 베트남 나트랑에서 마주친 한 사람의 이름이자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로, 이름을 몇 년을 고쳐 발음해봐도 처음 들은 소리를 그대로 흉내낼 수 없었다. 다시 반복할 때마다 처음 소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이 발음처럼, 〈부패하는 사과잼〉은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의 형태에서 벗어나며 부패하는 것들에 대한 작업이다. 작가에게 부패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상태다. 이름도, 기억도, 관계도 완결된 실체가 아니며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며 변형되고 무너지는 중인 것들이다. 같은 도시가 나트랑으로도, 또는 냐짱으로도 표기되듯, 모든 것은 정해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2019년 집필한 에세이 「썩어가는 것들과 그 이름에 대해」를 시작으로, 같은 해 사운드 퍼포먼스 〈부패하는 응우옌〉을 선보였고, 이후 베트남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재 에세이와 차학경 『딕테』를 번역해보는 실험을 거치며 발음과 번역이라는 소재를 다듬어왔다. 이번 작업은 그 과정에서 축적된 글쓰기를 낭독과 사운드, 신체 행위로 옮겨오는 확장이다.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는데 계속해서 실패함으로써 끝내 완결되지 않는 관계와 기억을 오래 들여다본다.

퍼포먼스는 사과, 부패, 기념품, 오렌지 주스, 응우옌 읽기라는 다섯 장을 지나며, 각 장면은 관계가 소유되고 소비되고 다시 미끄러지는 과정을 하나씩 쥐어보고, 다시 내려 놓는다. 무대에는 다양한 소리가 함께 놓인다. 사과에 금속판을접촉시켜 부패가 진행되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증폭하는 장치는 시간의 흐름을 청각적으로 변이시킨다. 사과와 기념품에 대해 낭독하는 목소리 또한 알고 있는 형상과 실재, 기억의 불일치를 불러낸다. 반면 메신저 속 ‘응우옌’은 둥근 프로필 사진 안에 멈춰 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얼굴은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지다가, 어느 순간 이 작고 둥근 기념품 같은 사진 한 장만이 남게 된다. 그 안에서 오가는 문장과 기억 속 대화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정확하고, 고르며 매끄럽다.  그러나 이 완벽한 음성마저 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값이 0에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결코 0에 닿지는 않는 y=1/x 그래프의 곡선은 다가갈수록 좁혀지는 듯 보이지만, 끝내 만나지는 않는 감각과 기억, 관계의 거리를 은유한다.

깎이고 남은 사과는 설탕과 함께 냄비에서 졸여져 결국 잼이 된다. 사과가 잼이 되었다고 해서 부패가 멈춘 건 아니다. 사과는 계속해서 썩어간다. 다만 그 부패는 손에 쥘 수 있는 다른 무언가로서, 아름다움과 대조되는 완벽한 청결함과 점점 멀어져 갈 뿐이다. 조명이 잔광만 남기고 사과잼 냄새가 공간에 잔잔히 퍼지는 마지막 순간, 무대에는 잼이 담긴 냄비와 발음되다 만 이름의 잔향만이 남는다.

안수연 (stacyahn98@gmail.com / @ahn_sooliy_art)